1. 사회정서학습의 시작, 감정과 관계도 배울 수 있을까?
학교는 오래전부터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사람을 길러 왔습니다. 교실에서는 글을 읽고 계산하는 방법만 배우지 않습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친구와 의견을 나누고,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는 경험도 합니다. 다만 이런 배움은 오랫동안 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사회정서학습의 역사는 이러한 생각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습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 배움과 성장에 중요하다면, 학교가 이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움이 드러난 학생에게만 사후적으로 도움을 주기보다, 모든 학생이 필요한 능력을 미리 배우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사용하는 사회정서학습, SEL은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의 약자입니다. 이 명칭은 1994년 연구자와 교육 실천가들의 협력을 통해 자리 잡았지만, 그 바탕이 된 학교 현장의 시도와 심리학 연구는 그보다 앞서 시작됐습니다. 따라서 사회정서학습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이름이 만들어진 시점과 교육적 토대가 형성된 시점을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1968년 제임스 코머, 학교를 아동발달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현대 사회정서학습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꼽히는 인물은 미국의 아동정신과 의사 제임스 코머(James P. Comer)입니다. 코머와 예일대학교 아동연구센터 동료들은 1968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두 초등학교에서 학교발달프로그램, 즉 School Development Program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두 학교는 지역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낮은 학업 성취가 두드러지는 학교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동발달에 관한 지식을 학교 운영에 적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학생의 학습을 교과 지도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발달과 행동, 학생을 둘러싼 관계를 함께 살폈습니다. 예일대학교는 코머의 접근을 학생의 발달과 행동, 학업적 배움을 개선하기 위해 아동발달 원리를 적용하는 모델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학업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학생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개인의 의지나 능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관계를 경험하는지, 학교와 가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발달에 필요한 지원이 마련되어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코머의 프로그램에서는 가정과 학교의 연결을 학생의 학교생활과 삶에 중요한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학교 안의 수업을 바꾸는 일과 학생을 둘러싼 어른들의 협력을 별개의 문제로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관점은 이후 사회정서학습이 교실의 활동을 넘어 학교 환경과 관계를 함께 다루게 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다만 코머가 1968년에 오늘날의 SEL이라는 이름이나 현재 널리 알려진 역량 체계를 완성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의 작업은 후대 사회정서학습 운동에 중요한 영감을 준 선구적 실천이었습니다. 학생을 학업 성적만으로 보지 않고 발달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3. 1980~1990년대, 사회적 기술 교육과 정서지능 연구의 만남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학생의 사회적 능력을 학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가르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뉴헤이븐에서는 티머시 슈라이버(Timothy Shriver)와 로저 와이스버그(Roger P. Weissberg) 등이 교육자들과 함께 사회성 발달 프로그램을 발전시켰습니다. CASEL의 역사 자료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이들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실에서 사회정서학습 전략을 개척했다고 설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와이스버그와 모리스 일라이어스(Maurice Elias)는 학교 기반 사회적 유능성 증진을 위한 W. T. Grant 컨소시엄을 이끌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의 사회·정서적 기술을 어떻게 길러줄지 연구자들의 지식과 현장 경험을 모으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흐름에서는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는 주장에 더해 교육 방법이 구체적인 관심사가 됩니다. 학생은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자신의 반응을 점검할 기회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사회적 어려움을 학생의 고정된 성격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배울 수 있는 기술과 지원 가능한 조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도 감정을 새롭게 설명하는 연구가 등장했습니다. 피터 샐로베이(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D. Mayer)는 1990년 논문 "Emotional Intelligence" 에서 정서지능의 개념적 틀을 제시했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표현하는 능력,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감정을 동기와 계획 등에 활용하는 능력을 함께 검토했습니다.
이 연구는 감정을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요소로만 보지 않고, 적응과 판단에 관련된 능력으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감정과 사고를 완전히 분리하기보다 감정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아차리고 활용하는지 연구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정서지능과 사회정서 학습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정서지능이 감정과 관련된 능력을 설명하는 이론적 개념이라면, 사회정서 학습은 학교 등 교육 환경에서 관련 지식과 기술, 태도를 어떻게 배우고 적용할 것인지 다루는 교육적 접근입니다. 따라서 사회정서학습 전체가 정서지능 논문 하나에서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학교 개혁, 아동 발달, 예방 교육, 사회적 기술 교육 등이 함께 만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합니다.
4. 1994년 CASEL 설립, 사회정서학습이 하나의 교육 분야가 되다
1994년은 이러한 여러 흐름이 하나의 분야로 모인 중요한 해입니다. 연구자와 교사, 실천가, 아동 옹호자들은 학교가 모든 학생의 사회·정서적 필요를 다루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이 협력 과정에서 사회정서 학습이라는 명칭과 함께 CASEL이 탄생했습니다.
CASEL은 자신들의 출발 목적을 근거에 기반한 양질의 사회정서 학습을 유아교육부터 고등학교 교육까지 중요한 요소로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특정 학생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모든 학생의 성장과 관련된 교육 분야로 발전하려는 방향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이후 1997년 일라이어스와 동료들은 [Promoting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Guidelines for Educators] 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사회정서학습을 교육 현장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지침을 제시한 초기의 중요한 저술입니다. 교실에서 사회·정서적 기술을 기르는 방법뿐 아니라 학교 차원의 실행과 효과 평가까지 다루었습니다.
사회정서 학습을 교육자의 관심이나 개인적인 실천에만 맡겨 두지 않고, 계획하고 실행하며 돌아볼 수 있는 교육의 영역으로 정리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개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단계에서 학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5. 2000년대, 개별 프로그램에서 학교 전체의 변화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자들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학교에는 다양한 예방교육과 청소년 발달 프로그램이 존재했지만, 학교 운영의 다른 부분과 연결되지 않거나 실행과 평가가 충분하지 않으면 효과와 지속성이 제한될 수 있었습니다.
그린버그(Greenberg)와 동료들의 2003년 논문은 이러한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했습니다. 사회, 정서, 학업적 배움을 조정하고 연결해야 하며, 교사가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전문성 개발을 지원하고 학교 개선을 위한 체계적인 점검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시기의 논의는 사회정서 학습의 역사에서 중요한 확장입니다. 교육의 관심이 학생에게 어떤 활동을 제공할 것인가에서, 그 활동이 학교 전체에서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로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재나 짧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일과 학교에서 배움이 정착하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학생에게 협력을 가르친다고 해도 수업에서 협력할 기회가 거의 없다면 연습이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안내하면서 실제로는 정해진 답만 허용한다면 교육의 메시지가 어긋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정서 학습은 학생에게 가르칠 내용과 학교가 제공하는 경험을 함께 검토하게 합니다.
6. 2011·2017년 메타분석, 사회정서학습의 효과를 검증하다
2011년에는 사회정서 학습 연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메타분석이 발표됐습니다. 덜락(Durlak)과 동료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 270,034명이 포함된 213개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개별 학교의 인상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여러 연구의 결과를 종합해 평균적인 효과를 검토한 것입니다.
분석에서는 비교 집단과 비교하면 사회정서학습 참여 학생들의 사회·정서적 기술, 태도, 행동, 학업 수행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학업성취에서는 평균적으로 11백분위점의 이점이 보고됐습니다. 이는 시험 점수가 일률적으로 11점 오르거나 모든 학생의 성적이 11% 향상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구에서 종합한 효과를 성취 분포상의 차이로 해석한 수치입니다.
이 연구가 교육계에 던진 의미는 사회정서 학습과 학업을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학생의 정서와 관계를 지원하는 교육이 학업적 배움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프로그램의 평균 효과이므로, 특정 활동을 도입하면 모든 교실에서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후 관심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변화가 이어지는지로 확장됐습니다. 테일러(Taylor)와 동료들의 2017년 메타분석은 학생 97,406명이 참여한 82개 학교 기반 사회정서학습 개입을 검토했습니다. 연구에 포함된 추적 시점은 개입 종료 후 6개월부터 18년까지 다양했습니다.
참여 학생들은 비교 집단보다 사회·정서적 기술과 태도, 안녕감 지표 등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다만 모든 학생을 18년 동안 추적한 연구라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추적 기간을 가진 연구를 모아 분석했다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결과를 살피는 연구의 등장은 사회정서학습을 바라보는 질문도 바꾸었습니다. 수업 직후 학생이 만족했는지, 활동을 잘 마쳤는지를 넘어, 배운 능력이 이후의 생활과 발달에 어떤 관련을 갖는지 묻게 된 것입니다. 사회정서 학습이 단기적인 분위기 개선 활동을 넘어 교육과 발달의 연구 주제로 자리 잡아 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 사회정서학습의 역사가 오늘의 교실에 남긴 질문
이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정서 학습에는 처음부터 이어져 온 두 가지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학생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살피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능력이 학생 개인의 노력만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제공하는 관계와 배움의 조건 속에서 발달한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사회정서학습을 학생에게 감정을 잘 다스리라고 요구하는 교육으로만 이해하면 출발점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코머의 학교 발달 프로그램은 학생을 둘러싼 발달 조건을 살폈고, 이후 연구자들은 가르칠 수 있는 기술과 교육 방법을 구체화했습니다. CASEL의 형성과 초기 지침은 여러 실천을 공통의 분야로 묶었으며, 메타분석은 그 효과와 한계를 검토하는 근거를 쌓았습니다.
학교 현장의 시도가 연구의 질문을 만들고, 연구 결과가 다시 수업과 학교 운영을 바꾸는 흐름 속에서 사회정서학습은 발전해 왔습니다. 하나의 이론이 완성된 뒤 모든 학교에 적용된 역사라기보다, 실천과 검증이 오가며 내용을 다듬어 온 역사에 가깝습니다.
오늘의 교실에서도 출발할 질문은 비슷합니다. 학생이 배움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눌 때 무엇을 어려워하는가, 학교는 이를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회정서학습의 기원을 살피는 일은 오래된 연도와 연구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생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학교가 그 성장에 어디까지 책임 있게 관여할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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